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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 시민이 주인이다 - "포르투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도"

마을 + 문화ㅣ발칙한 상상, 시민이 주인이다 - <포르투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도>
 
 
 
▲ 이안 브루스 지음, 최상한 옮김, 황소걸음 



서울시는 2018년 주민자치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주민자치의 핵심은 그간 행정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주민에게 이양하는 것이다. 주민에게 권한을 이양한다는 것은 3가지 요소가 전제 될 때 가능하다. 첫째 기획의 권한, 둘째 실행의 권한, 셋째 예산의 권한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으로 당선되고 지금까지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모토로 정책을 실행하여 왔으며, 다양한 시민참여와 혁신을 이루어 왔다. 그리고 박원순 3기에 들어서면서 시 예산의 5%를 시민참여형으로 설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전까지 서울시의 대표적인 시민참여 방식은 마을공동체 사업이었고, 주민이 직접 예산에 관여하려면 ‘시민참여예산’에 참여하면 되었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은 시정참여형, 지역참여형, 시정협치형으로 올해 총예산은 565억 원에 달한다.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이라니 매우 큰 예산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2018년 총예산은 얼마일까? 31조 7,000억 원이다. 그 중 시민참여예산은 0.18%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이 시장이다’, ‘주민에게 권한을 이양한다’고 하는데, 예산 규모만 보면 시민은 0.18%의 권한을 가진 셈이다. 물론 예산만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주민에게 권한을 이양한다고 했을 때의 필수요소인 3가지로만 이야기해본다면 딱 요정도이다. 그렇게 보면 ‘아니, 시민이 시장이라면서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이런 볼멘소리도 나올 수 있다. 물론 박원순 3기에서 시 예산의 5%를 시민참여형으로 설계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웠으니 한 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시민이 자신들이 필요한 예산을 결정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혁신이나 파격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권리일 수 있다. 민주는 민(民)이 주인인 주의이다. 그런데 우리는 4년에 1번 투표하는 10분 정도만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시민들은 너무 바쁘고 행정에 무관심하고 전문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와 공무원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시민들이 행정의 상당부분의 예산을 수립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이미 실험한 곳이 있다.

책 《포르투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도》에서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시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한 시민의 참여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포르투알레그리는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남부에 있는 인구 300만 명의 도시이다. 포르투알레그리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최초로 실행했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1989년 노동자당이 집권하면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실험으로 시행되었다. 지방정부의 정책에 주민이 참여하여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특히 저소득층과 노동자층 주민이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하여 지방정부의 예산을 직접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에 저소득층과 여성, 청년, 노동자층이 참여하면서 시민사회의 층이 두터워지고 성장하게 되었다. 실제로 글을 읽거나 쓰지 못했던 시민이나 노숙자들이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글을 배우게 되고, 주거 복지를 개선하기도 하였다. 이전 정책 집행자들에게는 배제되고 보지 못했던 부분이 주민들이 참여하고 직접 결정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포르투알레그리 주민참여예산제도 시행 이후 지방정부 예산의 투명성은 높아졌고, 행정의 권위적인 시스템을 약화시켰고, 그 결과 행정의 부패 또한 감소하였다.



 

▲ 1989년 시작된 포르투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도. 주민이 직접민주주의로 지방정부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출처: occupysf.net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실시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전 세계 지방정부로 퍼져나갔다. 브라질 내부에서는 350여 개의 지방정부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실시한다. UN은 이 제도를 세계 40대 모범 시민제도로 선정했으며, 세계은행은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협의 모델로 평가했다. 현재 시민참여예산제도는 40여 국가, 3,000여 개 지방정부에서 도입, 시행되고 있다. 

포르투알레그리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시정부예산 중 25% 정도인 공공투자부문의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고 있다. 도로포장, 주택, 학교, 대중교통 등에 대한 시예산의 분배와 집행에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한다. 최종 예산에 대한 심의와 확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회에서 행사하지만, 우리처럼 의회의 힘이 막강하지는 않다. 이유는 시민들이 직접 결정한 사항에 대해 조정하고 삭감하는 데 한계가 있고, 또 시민사회로부터 집단적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보수정권이라 하더라도 주민참여예산제도를 공약으로 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떨어질 만큼 그 중요성이 높고 시민들의 인식도 높다.

주민참여예산의 시작은 3월에 1단계 준비회의를 거쳐, 4~5월에 2a단계로 16개 지역과 6개 주제별 총회가 열린다. 지역총회는 14개 목록 가운데 상위 4개의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평의원 2명과 대체 평의원 후보 2명을 선출하게 된다. 토론자 대의원 수는 총회에 참여한 주민 수 10명당 1명으로 결정한다.
2b단계에서는 다시 지역(동네, 거리), 주제별 영역과 하위 영역에서 다양한 회의를 추진한다. 그리고 1차 총회와 2차 총회 사이인 5~6월에는 대의원과 조정관으로 구성되는 중재회의인 지역별, 주제별 대의원포럼이 열린다.
7월 중순에는 3단계인 자치총회가 열리며 이는 시 전체의 대규모 회의이다. 여기서 시에 제출된 사업과 서비스에 대한 요구사항과 순위를 토론하고 예산에 대한 일반적 토론이 진행된다. 
7~9월에 4a단계로 예산안을 준비하는데, 주민참여 평의회와 시의 부서간 회의가 진행되고 시와 평의회는 예산초안을 준비하고 조정과 확정을 한 다음 최종 승인을 위한 예산 제안서를 시의회에 제출한다. 이때 시의회를 압박하는 대중집회도 지역에서 실행된다.
이후 10~12월은 4b단계로 시의 투자와 서비스 계획을 준비한다. 초안은 합의한 예산 제안서와 다양한 기준에 따라 작성된다. 지역별, 주제별 대의원 토론회에서 주민참여 평의회가 최종 승인하는 투자계획을 토론하고 결정하는데 이때 시 기획실과 공동체 관계부서도 참석한다.
이후 이듬해 7월까지 참여예산 위원활동이 계속되고 규정에 대한 토론과 실행을 진행한다.



포르투알레그리 주민참여예산제도에는 매년 5만 명 이상의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들의 성향과 특성은 주로 백인, 저학력자, 고령자, 저소득층의 참여가 활발하다. 그리고 주민참여예산제도 이후 지역주민생활과 밀접한 활동을 하는 단체가 1,000여 개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알았다. 포르투알레그리 주민 99%는 상수도를 공급받고 있고, 83%는 하수도를 이용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도입되던 초기인 1988년에 주민들의 50%만이 하수도를 이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배수관이 딸린 250km가 넘는 아스팔트 도로도 가장 빈곤한 지역 위주로 깔렸다. 주택에 대한 세출은 1989~2000년에 4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시립학교도 22곳에서 90곳으로 4배 이상 증가했으며, 낙제하는 학생 비율은 30%에서 10%로 줄었다. 기존에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던 공동체 운영 놀이방 114곳은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고, 시립버스회사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휠체어 탑재가 가능한 버스를 운행했다. 시민들이 생활현장의 불편함을 제대로 파악하고 결정한 결과이다. 

서울시도 이제 5%의 예산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시행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브라질의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적극 검토하면 좋겠다. 브라질의 주정부인 히우그란지두술은 인구가 서울시와 비슷한 1,017만 명으로 시군구가 497개이다. 여기서도 포르투알레그리처럼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참여인원은 2002년 33만 명에 대의원 16,145명을 선출하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작한 서울형 주민자치 시범사업을 2022년까지 424개 자치구 전 동(洞)에서 실시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민참여위원은 50명, 각 분과원은 10명 정도로 산정하고 주민총회에 참석하는 인원을 300~400명가량이라고 추정한다면 대략 17만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게 된다. 여기에 주민참여위원과 공동체활동 모임 그리고 유사한 지역활동 모임까지 합친다면 3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브라질과 비교해볼 때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다. 결국 이런 주민들에게 힘과 권한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예산이다. 시민의 힘과 역량을 믿고 권한을 주자. 서울 10년 혁명의 완성은 시민이 시장이고 주인이 되는 것이고, 그 시작은 예산부터라고 본다. 시민을 믿고 일단 해보는 게 어떨까. 





 
 

_ 박상현(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본 기사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야기> vol.74호(2018.12.19.) 기사입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시고, 전문 기사에 대한 링크를 걸어주세요. (단, 영리 목적에 의한 퍼가기는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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