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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청년들의 현실 보고서 / 영화 "소공녀"

마을 + 문화ㅣ도시에 사는 청년들의 현실 보고서 - 영화 <소공녀>
 


 




집 없는 도시에서의 생활

과연 가능할까? 전고은 감독의 영화 ‘소공녀’는 2017년 개봉작으로 영문 제목은 ‘microhabitat’다. 사전적 정의는 미소(微小) 서식 환경. 미생물이나 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표음이 같은 ‘미소’. 우연이 아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인공이 서울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표의와 같이 ‘아주 작기’ 때문이다. 사는 집의 평수는 ‘0㎡’이다. 사무공간이나 개인용 의자 하나 없다. 일하는 근무지도 남의 집이다. 미소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납골당의 면적은 약 25㎤라고 한다. 미소는 이 정도의 공간도 필요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니까 가능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대학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중퇴했을 때, 그녀의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이 선택 옵션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건 하이퍼리얼리즘이다. 영화 막바지에 더 이상 친구들의 집에 머무를 수 없을 때 미소가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소는 공인중개사와 함께 더 오를 수 없을 만큼 오르고, 공간이 없을 것 같은 곳에 숨어 있는 방을 찾아다닌다. 월세 5만 원 차이에 창문을 포기해야 하고, 10만 원 차이에 전기를 포기해야 한다. 수중의 보증금에 맞춰 좀 더 싼 방 없냐고 물어봤던 경험이 있다면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극중 내내 사랑스런 미소를 잃지 않는 주인공 미소도 이때만큼은 웃질 못한다.



 


 ▲ 미소는 일당 45,000원짜리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집도 없이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산다.



미소는 왜 집 없이 친구 집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살게 된 걸까? 이유는 이렇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남자친구와 “봄에 하자”는 약속을 할 만큼 열악한 환경(하지만 극중 미소가 소유했던 유일한 방이었다) 속에서 생활하지만 나름 소확행의 삶을 놓지 않고 있던 미소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집주인이 찾아와 5년째 동결이던 월세를 5만 원 올려달라고 한 것이다.(물론 여기서 나오는 집주인도 월세의 월세를 주고 있으며, 집주인의 집주인이 10만 원 올려달라는 걸 미소에게 반 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월세 5만 원은 언뜻 작아 보이지만 미소의 가계부를 마이너스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미소는 이미 오른 담뱃값 때문에 원래 피우던 4,500원짜리를 포기하고 4,000원짜리로 바꾼 상태다.

일당 45,000원에 밥값 10,000원, 세금 5,000원, 약값 10,000원, 집세 10,000원(1일 계산), 위스키 12,000원, 담배 4,000원을 제하고 나면 6,000원이 모자란다. 가계부를 한참을 들여다보던 미소는 과감하게 항목 하나에 취소선을 긋는다. 그게 바로 집이었다. 집을 포기하고 나니 미소에겐 4,000원의 여유가 생기기까지 한다. 집이 없는 미소는 여행가방에 들어갈 만큼의 짐만 빼고 다 정리한다. 그리곤 대학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하루하루 신세를 진다. 이 때문에 영화는 도시 속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다. 가성비 갑(甲)만 찾아다니는 예능프로그램 <짠내투어>가 초호화 럭셔리 여행이라고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학창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은 뜨거웠던 그 시절을 뒤로한 채 저마다 도시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방음 하나 안 되는 좁은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키보디스트 정현정, 회사 점심시간에 수액을 맞으며 더 큰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는 베이시스트 최문영, 결혼 8개월 만에 대출받은 집만 남겨진 드러머 한대용,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장가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미소에게 결혼하자는 노총각 보컬 김록이, 부잣집에 시집가 남편 눈치만 보고 살아가는 기타리스트 최정미까지. 미소는 집은 없지만 스스로 짊어진 무게가 불행에 짓눌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녀에겐 확실한 버팀목 소확행 세 가지가 있다.




행복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
 
담배,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 그녀는 이 세 가지를 안식처라고 말한다. 담배와 위스키는 집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지켜냈던, 그녀가 사랑하는 플라시보(placebo) 소비재다. 담배는 아마 그녀가 어디에 있든 그녀의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한 모금의 안도감이었을 것이고, 위스키는 도시 속에서 외로울 때 그녀에게 자리를 제공해주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였을 것이다.(그녀는 영화 내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한다.)

남자친구 한솔은 만나기만 해도 좋은 사이다. 비록 공장 기숙사에서 살며 웹툰 공모전을 준비하는, 한마디로 벌이가 미소만큼이나 좋지 않은 남자친구이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그냥 행복해진다. 그래서 그가 미소와 함께 살 보증금 5,000만 원을 벌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간다고 했을 때, “배신자”란 말만 되풀이한다. 이에 한솔은 상상력을 발휘해보라고 미소를 달랜다. 옆에 있다는 상상. 한솔이 회사에서 사준 정장을 입고 생명수당을 받아가며 중동으로 떠나는 장면은 모 대통령이 심어준 상상력이 실현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미 고급화되어 전문가가 필요한 중동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D뿐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 한솔은 월급을 3배나 많이 주기 때문에 파견 근무를 신청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일 것이고, 여자친구와 2년 동안 생이별을 해야 한다. ‘N포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 ‘밀레니엄세대’와는 다르게 특성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붙여진 스티그마(stigma, 표식)다.



 


▲ 미소의 안식처는 남자친구, 위스키 그리고 담배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미소가 자신들의 사정으로 바쁜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거절당하고, 본의 아니게 쫓겨나는 걸 보고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면 50,000원 오른 집값을 내고 보증금을 차곡차곡 모아서 이사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의 현실을 습득이 아닌 체득으로 살게 된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 출처: 2017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연구결과 발표회 자료집



“청년수당을 받은 지 1년 내로 취업을 하지 못하면 고리의 이자를 붙여 원금까지 다시 토해내도록 하지 않는 이상, 해당 청년들이 취업에 힘쓸 이유가 있을까?”

위 발언은 청년수당을 비판하면서 올라온 인터넷 기사 중 일부에서 가져온 말이다.(시쳇말로 ‘말이야 방구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글로 쓰여 있어 읽을 수는 있다.) <2017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연구결과 발표회> 자료에 따르면 청년활동지원금의 41.4%는 생활비에 쓰였으며, 36.9%는 학원, 교재비 등 진로준비 직접비용, 나머지는 면접이나 구직, 진로준비 등에 사용되었다. 아마 위 발언을 하신 분은 국민의 세금이 청년들의 생활비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한 것 같다. 돌려받지 못할 돈이니까 말이다. 미소를 현실에서 만난다면 혀를 끌끌 차거나 게으른 낙오자라며 상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자신을 감추고 부잣집 며느리로 살아가는 최미정이 미소에게 했던, 난방 끊긴 원룸처럼 차갑게 내뱉은 말처럼.

“나 그냥 솔직히 말할게.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담배라는 것도 솔직히 진짜 한심하고, 그것 때문에 집도 하나 못 구해서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서 그런 것까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네가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 안 드니?”

지나친 상상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아이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돈가스 1인분을 먹었다며 기분 잡쳤다는 민원을 넣고, 5년 정도 복지재단에 후원을 지속해온 후원자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롱패딩을 선물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냈다가 아이가 말한 패딩이 본인이 생각했던 금액보다 10만 원정도 많은 20만 원짜리 브랜드 패딩이라는 괘씸죄로 후원중단을 요구했다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도시에서의 빈곤은 청년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지급되었던 청년수당이 세금이라는 이유로 청년들을 빈곤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수당을 받았으면 최소한의 끼니만 해결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오로지 취업만을 목적으로 사용해 성과를 내야만 한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도시에서의 청년의 모습이다. 그 외의 모습은 안 된다. 미소처럼 산다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칫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상은 미소의 소신으로 균형을 잡는다. 부모님을 위해 자신과 결혼하자며 몸만 들어오라는 김록이한테 미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중인 거야. 내가 떠돌아다닌다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물건이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하는 도시에서 미소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청년들 아니, 사람들에겐 누구나 생각과 취향이라는 게 있다. 자아를 찾고, 발휘하고,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며 살라던 성숙한 시민의식은 비빌 언덕조차 보증금이 필요한 도시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떠다니고 있다. 청년은 계급이 아니다. 그러기에 특정 계급만을 위한 선별적 복지라는 정책 비판은 맞지 않는다.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에게 헌법에서 인정하는 사회권으로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뿐이다. 도시는 청년과 공존해야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도시를 떠나는 선택지만을 주어선 안 된다. 청년이 없는 도시는 분절되고, 분절된 도시는 균형을 잃고 만다.




청년을 위한 도시는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11조부터 39조에는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나와 있다. 이는 대부분 사회권에 관한 내용이다. 법 앞에 평등,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침해를 받지 아니함 등 다양한 권리들이 있으며, 34조에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35조에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생활을 보장 받고 있을까? 미소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청년들은 택1만 가능하다. 소확행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한 가지는 포기해야만 한다. 두 개 이상부터는 사치가 되어버린다.



 

▲ 출처: 시사IN, 청년수당의 빛나는 성적표 (https://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987)



“나는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해나갈 수 있다.”, “나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다.” 청년수당을 받은 참여자들에 대한 설문 내용이다. 참여자들은 대다수의 질문에서 긍정적 변화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사실 질문 자체에 시대의 슬픔이 어려 있다. 만약 이 질문 모두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을 경우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고될 것인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의지할 수 있는 비빌 언덕, 그리고 자존감이다. 미소가 만약 이 질문을 들었다면 과연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을까?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남자친구와 더 이상 미소를 재워줄 수 없는 밴드 친구들, 집을 팔아서 미소를 고용할 수 없는 고용주까지 모두 그녀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다.

도시에서 청년들이 살기는 힘들다. 아니, 청년들이 어디에 있든 그들에 대한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의 고됨은 시대를 넘어 대물림될 것이다. 그들에겐 비빌 언덕, 즉 공동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동료로서의 공동체도 필요하고 사회적 안정망으로써의 공동체도 필요하다. 인간답게 산다는 건 최소한의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과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곰팡이 핀 원룸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담배일 수 있고, 위스키일 수도 있으며, 영화나 음악, 운동, 소설책일 수도 있다.

영화 마지막에 확인된 미소의 모습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지병이 있는데, 한동안 약을 먹지 못한 걸로 보였다. 바(Bar)에서 떠나며 위스키 값을 지불하는 걸로 봐서 집 다음으로 약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어리석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를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소확행이 아직 유효하기에 그녀는 일을 하며 계속 살아가고 있다.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남자친구, 미소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그녀의 미래가 새드 엔딩(Sad Ending)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 현재의 미소가 불행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감독은 아마 영화를 본 관객들이 힘들 때 미소를 떠올리기를 바랐던 거 같다. 지금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야 행복이라는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는 걸 미소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장점은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시에서 청년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잔뜩 모여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거쳐 갈 청년 시절,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도 눈치 보지 않는 그런 도시에 청년들이 살 수 있기를 미소와 함께 바란다.



 

▲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미소, 아니 청년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_안중훈(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지역지원실)
사진_영화 <소공녀> 스틸컷


 
본 기사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야기> vol.75호(2019.1.30.) 기사입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시고, 전문 기사에 대한 링크를 걸어주세요. (단, 영리 목적에 의한 퍼가기는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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