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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마음으로 마을읽기ㅣ결혼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15년 국내 개봉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감독 미노리카와 오사무)는 일본의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수짱》시리즈를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스다 미리는 일본 내에서 ‘국민 언니’, ‘30대 싱글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로 불립니다. 영화에는 결혼과 일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는 30대의 세 여자 수짱, 마이짱, 사와코상이 등장합니다. 이 셋은 친구입니다. 이들은 종종 만나, 요리가 취미인 수짱이 만들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삶의 희로애락을 나눕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 격하게 공감하는 이유는 일과 결혼을 둘러싼 여성들의 고민을 제대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바로 ‘삶의 단절성’ 말입니다.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조직화된 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삶의 단절을 겪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과 달리, 일과 가족의 분리와 대립이라는 ‘근대적인’ 생활양식 속에서 단절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합니다.



 

▲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엄마와 살아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사와코상, 결혼하여
임신, 출산을 앞둔 마이짱 그리고 주인공인 카페 매니저 수짱 등 30~4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경력단절· 독박육아… 일·가정 양립이 아직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

2017년 기준 우리나라 20대 후반 여성의 고용률은 70% 수준입니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은 아이를 갖게 되는 30대 즈음에 고용률이 급락합니다. 6세 이하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의 고용률은 30%대로 떨어집니다. 반면, 같은 조건의 아버지는 98% 이상이 일을 합니다. 정부는 여성들이 일도 하고 아이도 낳아주길 바라며 ‘일·가정 양립’ 정책이라는 것을 내세웠지만, 일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남성과 직장은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인 채 여성에게만 일과 가정을 양립하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요구하니까요. 부부의 시간 사용 현황을 관찰하면, 이런 실상을 뚜렷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남성들은 맞벌이를 하든 하지 않든 전체 가사노동 시간의 겨우 10%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신 유급노동 시간은 여성들보다 훨씬 깁니다. 기업은 주부라는 조력자를 둔 기혼남성을 이상적인 노동자상으로 전제합니다. 종일제로 일하며 초과근무까지 해야 직장에 헌신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풍토도 여전합니다. 현실에서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주부’라는 형태의 가족유형은 일부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자는 아내에게 가정에 대한 책임을 떠맡기고, 여자는 할머니들에게 가정의 책임을 떠맡깁니다. 할머니들이 멀리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면, 여성은 일과 집안일 모두를 부담해야 하는 ‘이중노동’이라는 불공평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자 하는 바람을 포기하든지요.



 

▲ 친구 수짱과 만삭 기념사진을 찍은 마이짱. 출산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독박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들은 단절 전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에서 자신이 잊힌 존재가 될까봐 두렵습니다. “엄마가 되면 지금까지의 내가 사라질 것 같아.” 사진관에서 만삭 기념사진을 찍던 마이짱의 우울한 모습은 단절에 대한 여성의 두려움을 잘 표현합니다. 결혼을 통해서만 가족을 형성하도록 제도화된 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못한-혹은 할 수 없는-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이 갖는 불안에 대해서도 영화는 수짱과 사와코상을 통해 잘 보여줍니다.
실상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여성들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아내와의 결혼을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에 대해 김정운 교수는 일부일처제의 비극이라고 해석했지만(《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일과 가족이라는 경쟁적인 두 세계 사이에서, 사회시스템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으며 연속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남성과 사회시스템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분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은 삶의 만족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2017 한국의 사회지표>(통계청)를 보면 남성은 71.3%가 결혼생활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여성은 그 비중이 58.5%에 불과합니다. 성별에 따라 결혼생활 만족도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한국사회가 혼인율은 낮아지고 동시에 이혼율은 높아지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그 현상의 뿌리를 보게 됩니다.



 

▲  수짱이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피크닉을 나온 세 주인공. 결혼이 가져올 삶의 단절성과 변화에 대해 이들은 한 명 한 명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민한다.


 
남녀 모두 결혼하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회
VS
젠더 평등으로 가족 강화를 이룬 사회


요즘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 남녀가 왜 결혼하지 않는가. 그건 남녀 모두 결혼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가 손해 보는 내용이 다릅니다. 결혼하면 여자는 시간을 잃고, 남자는 돈을 잃는다고 느낍니다.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여자는 가사와 육아 전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결혼관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별 분업을 따르는 보수적 결혼관을 가진 남녀일수록 비혼인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구조의 변화로 남성의 돈 버는 능력은 차츰 떨어지는 추세이니까요. 젊은 층일수록 남성의 임금수준이 낮아, 결혼하고도 여성이 일하지 않으면 가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산업구성비나 인구 감소와 같은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도 여성의 취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돌봄 노동을 죄다 아내에게 맡기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비혼은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대처하는 합리적 선택인 셈입니다.

복지국가 체제론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사회학 교수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은 최근 저작《끝나지 않은 혁명》에서 주목할 만한 주장을 제기합니다. 북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지금 한국이 겪는 ‘가족 약화’를 50년쯤 전에 먼저 겪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유사한 ‘가족 약화’ 경로로 진입한 시기에 선두 국가들은 오히려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혼은 감소하고 결혼과 출산은 늘어나 새로운 ‘가족 강화’를 이루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고학력·고소득층일수록 평등한 부부관계를 잘 받아들여 그로 인한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답니다. 젠더 평등 규범을 채택한 부부는 안정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자녀를 출산하고, 더블 수입으로 노후를 위해 저축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부모 모두 자녀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 그로 인해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의 지위를 대물림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가족 내 공평한 가사 분담, 자녀에 대한 투자와 같은 변화들이 전체 사회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상위 계층에게 한정된다면, 이로 인해 새로운 불평등과 양극화가 초래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합니다.

그가 경고한 새로운 불평등과 양극화의 조짐이 한국 사회에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출산휴가, 육아휴직 같은 제도를 활용해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이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정규직들입니다. 고학력·고소득의 전문직종들은 젠더 평등 규범을 수용해 직장문화와 규칙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세한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고용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들은 이런 법률과 제도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임신·출산을 하면 노동시장에서 나와 독박육아를 전담했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재취업을 시도합니다. 이럴 경우 이전보다 더 열악한 고용조건의 일자리로 가게 됩니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녀양육을 전담한 게 도리어 불이익과 차별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가족 내 공평한 가사분담, 자녀에 대한 투자와 같은 변화들이 상위 계층에만 한정되지 않고 전체 사회로 골고루 퍼져나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사회가 소득분배와 경제민주화 이슈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반드시 성평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가족 내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의 공정한 분배와 성별 임금격차를 빠뜨린 소득분배 논의는 불완전합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가능성을 실현시키려면 여성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시장이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여성들이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속도에 보조를 맞춰 남성과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결혼과 출산은 앞으로 더욱 희귀한 사치재가 되어버릴 겁니다.



 
여성들에게 결혼은 단순히 가정을 형성하는 일을 넘어, 자신의 삶과 일에 크나큰 단절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비혼과 비출산도 많아지는 것이겠지요. ‘가정의 달’ 오월을 맞아 결혼을 매개로 여성의 일과 삶에 대한 글을 나눕니다. - 편집자 주





 
 
_이정주
사진_ 다음 영화
 

 
본 기사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야기> vol.79호(2019.5.29.) 기사입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시고, 전문 기사에 대한 링크를 걸어주세요. (단, 영리 목적에 의한 퍼가기는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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