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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휴공간을 살려내는 열정 / ‘동네골목 심폐소생술’ 컨퍼런스

현장 유휴공간을 살려내는 열정 / '동네골목 심폐소생술' 컨퍼런스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2016년 최초로 시행한 우리동네 행복한 골목만들기사업은 흔히 근린(近隣)이라 불리는 생활권 즉 골목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사업이다.
골목은 실제적으로 주민들의 만남과 삶이 이뤄지는 곳으로, 그 안에도 다양한 이슈들이 존재한다. 안전, 경관 개선,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되는 ‘둥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자치구나 행정 동단위 마을사업과 달리 골목만들기 사업은 주민들의 관심이나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골목특화사업단에서는 사업 선정자들의 역량 강화 및 원활한 사업운영을 돕고자 우리동네 행복한 골목 컨퍼런스를 2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1차 컨퍼런스는 2016 서울시 마을주간 행사와 맞물려 10월 5일과 6일에 걸쳐 ‘젠트리피케이션’과 ‘골목 상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2차 컨퍼런스는 11월 22일 ‘쓰레기 문제’와 ‘골목 안전’이란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일반 주민들의 골목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 것은 물론, 사업지기들이 상호 노하우를 나누고 상호 멘토링을 할 수 있는 관계 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106일 용산구 원효로1가에 위치한 바빽룸에서는 동네골목 심폐소생술이라는 테마로 우리동네 행복한 골목 컨퍼런스가 열렸다. 우리 삶의 생활반경인 골목이 더 이상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되고, 유휴공간으로 가득 차게 될 때 어떻게 하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상업과 문화(청년장사꾼 김연석 대표), 도시재생과 예술(문래캠퍼스 이소주 대표), 공동체 예술(예술수색단 정현식 대표)이라는 키워드로 세 명이 답을 들려줬다.


 

컨퍼런스 전경. 다양한 이들이 모여 골목의 유휴공간을 살려내는 법에 대해 들었다.
▲ 컨퍼런스 전경. 다양한 이들이 모여 골목의 유휴공간을 살려내는 법에 대해 들었다.

 
 





열정으로 골목에서 문화+장사를 펼치는 청년장사꾼
 

▲ 청년장사꾼 김연석 대표가 지역생존법에 대해 발표중이다.
▲ 청년장사꾼 김연석 대표가 지역생존법에 대해 발표중이다.
 
지역상권 활성화 부분에서 청년장사꾼의 역할.(김연석 대표 강의자료)
▲ 지역상권 활성화 부분에서 청년장사꾼의 역할.(김연석 대표 강의자료)
 


‘열정감자’, ‘계단장’, ‘열정도(熱情島)’로 유명한 외식 주식회사 ‘청년장사꾼’은 서촌과 이태원, 공덕동 등 국내 13개 매장과 백화점과 해외의 매장까지 포함하여 다수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장사꾼’의 대표 김연석(34) 씨는 장사가 안되는 골목 상권을 되살려내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장사꾼의 모토는 ‘자력갱생’. 그러나 ‘우리만 잘 먹고 살자’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부터 잘 먹고 잘 산 그 다음은? 지역과 호흡하고 지역과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이런 답이 가능한 까닭은 청년장사꾼이 골목, 아니 지역, 달리 말하면 상권을 찾아간 이유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김연석 대표는 ‘“장사란 아이템, 자본, 인맥이 전부다. 청년들에겐 다 없는 것들이다. 청년들에게 있는 것이라곤 열정과 체력밖에 없다. 그렇기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장사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목’이라고 한다. 목의 다른 말은 돈이다. 장사 잘 되는 목에 아예 진입할 엄두를 못냈던 김연석 대표는 거기서 다른 접근을 했다. 지금은 비록 비인기(?)에 안 팔리는 골목이라도 자신들이 활동을 잘 해서 해당 골목을 상권으로서 조금 더 좋게 만들면, 결과적으로는 좋은 상권에 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는 것과 진배없지 않느냐는 셈법. 그렇기에 지역을 정하는 데 누구보다 신중했다.
첫째 메인상권과 인접한 곳. 자신들의 아이템이 아주 특출하지 않다고 인정한 이들은 바로 옆에 강력한 콘텐츠가 있는 곳을 선호했다. 둘째 활용 가능한 콘텐츠가 많은 곳일 것. 같이 갈 수 있는 아이템이 많을수록 좋다. 셋째는 임대료가 쌀 것. 마지막 이유가 흥미롭다. 지역적인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곳. 2012년 창업 당시 이런 기준에 맞춰 그가 점찍은 곳들이 서촌, 이태원 우사단마을, 경리단길, 성수동, 충장로였다. 그 중 이태원 우사단마을과 서촌지역 두 개 매장을 2012년에 오픈하여 성공시켰고, 그 사이 타 지역도 모두 ‘뜬’ 동네가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그러니까 임대료가 싼) 골목을 살려낼까. 여기에는 건축과 도시를 전공하고 문화기획자로 일했던 김연석 대표의 이력이 도움이 됐다. 그는 문화적인 방법으로 이슈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알아도 우사단이라는 길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이태원 관련 지도를 만들고, 마을모임도 만들고, 동동투어라는 이름으로 동네 투어도 했다. ‘허세문학상’, 옥상유랑단 등 동네의 ‘잉여’ 인력들과 다양한 일들을 벌였다. 이 활동들은 장사와는 별개로 비영리로 진행했다. 그중에서 ‘대박’이 났던 건 계단장이었다. 우사단의 긴 계단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은 나중에는 하루 2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특히 한 TV 프로그램의 유명 다큐에 나온 다음날에는 3만 명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도리어 이런 유명세는 장터를 닫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고.
“땡볕에 방문객들은 줄을 엄청 길게 서고 있지, 셀러는 화장실도 못 가지, 운영자도 판매자도 너무 힘들었다. 나중에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들어와’ 시스템을 운영했는데, 결국에는 그것도 힘들어서 이젠 안 한다. 나는 장사꾼이지만 이런 마을 활동은 모두 비영리로 했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골목에서 우리끼리 ‘재밌게 놀아볼까?’ ‘장사나 해볼까?’ 이런 개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불쏘시개 역할은 이걸로 된 것 같다.”
오랫동안 활동했기에 동네 친구도 스무 명 이상 많아졌고, 충분히 동네 활성화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한다. 그 이후에는 장사로 동네 활성화하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 예로 서촌의 열정감자가 있다. “장사를 정말 열심히 했다. 손님들과의 소통도 열심히 했고. 동네의 수능 보는 학생들에겐 피켓 들고 응원도 해주고, 엿도 나눠주고, 어버이날에는 동네 어르신에게 카네이션도 달아드렸다.” 단지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정과 관계를 판 것이다.

현재 청년장삿꾼은 효창공원 근처에 ‘열정도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버려진 인쇄소 단지에 7개 매장을 동시에 오픈해 화제가 된 그 프로젝트다. 워낙 들고남이 적은 골목이다 보니, 1차부터 시작해 3차까지 모두 이곳에서 끝내라고 매장을 집합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청년장사꾼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이, 문화를 통한 동네 활성화와 장사를 통한 동네 활성화로 이원화했던 것을 결합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야시장’ 행사다. 보통 기존의 매장을 가진 가게들은 영업시간에 겹쳐지는 ‘장터 활동’을 좋아하지 않게 마련이다. 그러나 청년장사꾼은 오히려 반겼다. 자리를 만들어줄 테니 푸드트럭도 오라고 하고, 셀러들도 얼마든지 참여를 독려했다. 공연이나 판소리 같은 것도 모두 받아들였다. 야시장 아이템과 기존 상점의 아이템들을 절묘하게 엮어 홍보하면 실제적으로 매출 향상이 났다. 두 배 가량 늘 정도였다고 한다. 초반에 약 2,000명 정도가 야시장을 방문했다면 현재는 8,000명 가량이 찾는 곳이 됐고, 유명세도 커져서 모 카드회사의 후원도 받고 있다고 한다.
 


 



예술가-주민-철공소 문래동에서 삼각의 소통 풀기
 

 
문래캠퍼스를 통해 지역의 업사이클을 이루고 싶다는 이소주 대표.
▲ 문래캠퍼스를 통해 지역의 업사이클을 이루고 싶다는 이소주 대표.
 
철재산업단지인 문래동의 느낌을 이어서 만든 철제 예술품 (이소주 대표 강의자료)
▲ 철재산업단지인 문래동의 느낌을 이어서 만든 철제 예술품 (이소주 대표 강의자료)
 


그림책 작가였던 이소주 대표는 2005년, ‘작업실’을 찾아 문래동에 왔다가 이 골목의 매력에 빠져 10년 넘게 살고 있는 예술인이다. 사회적기업 보노보C의 대표이기도 하고, 2016년 마을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을 꿈꾸는 문래캠퍼스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소주 대표는 마을예술을 통한 문래동 골목 활성화를 발표하기 이전에 먼저 해당지역에 대한 역사적 배경부터 설명했다. 크게는 영등포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문래동으로 좁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영등포가 문래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영등포가 엄청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기반산업이 집중되어 있었고 산업의 중심지였다. 영동대로라는 이름이 ‘영등포의 동쪽 대로’에서 나왔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영등포구는 한때 서울의 전체 구 중 1/3에 해당할 만큼 컸다. 그러나 금천구, 양천구, 동작구로 모두 분할되어 가면서 예전의 위신을 잃었다.
영등포의 시작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일전쟁 당시 인천에서 서울을 잇는 철로와 부산에서 서울을 잇는 철로의 교착점이 영등포였다. 운송의 집결지인 만큼 산업적으로도 발전이 빨랐던 곳으로, 오백채라는 최초 집단 주거시설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주택공사의 전신인 영단주택이 최초로 만든 집단 거주지가 영등포에 있었던 것을 보면, 이미 일제때부터 공업지대로 이곳을 발전시킬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 만들어진 산업거점, 인프라를 바탕으로 영등포는 한국전쟁 후 삼백산업(三白産業)과 함께 눈부시게 성장했다. 삼백산업은 1950년대 당시 대한민국 산업의 3대 성장 부문인 제분, 제당, 면방직 공업을 이르는 말이다. 면방직 공업으로 유명했던 경성방직이 영등포에 있었다. 지금 영등포 경방 타임스퀘어의 ‘경방’이 거기서 나온 말이다. 구 경성방직 사무동은 타임스퀘어 공사 당시 다 부서졌으나 다시 복원하여 카페로 만들었고 등록문화재 135호로 지적되어 있다. 또 현재 영등포구 도시 재생사업에 ‘경제기반형 사업’지구로 선정된 곳이 대선제분 부지가 있는 곳이다. 제일제당도 이곳에 있었고 크라운 맥주와 오비 맥주도 모두 영등포에 있었다. 영등포공원에 가면 1936년에 맥아를 쑤던, 순동으로 된 솥단지를 볼 수 있다. 오비맥주가 이전하면서 기념으로 두고 간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서 문래동을 보면 예로부터 문래동은 철재로 유명했던 곳이다. 1955년에 큰 철을 다루는 곳들이 들어오면서 이어 용산 지역에 있는 비철 쪽 업체들이 유입되었고, 철가공하는 업체들도 조성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공해 문제가 부각되고, 이 부근이 주택부지로 개발되면서 공장들이 이전하기 시작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재개발 이슈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소주 대표는 이곳에 2005년에 왔다. 이유는 ‘임대료가 싸서’였다. 당시 평당 임대료는 1만원선. 당시만 해도 예술가라고는 3명에 불과했다. 임대료 말고도 좋은 점이 있었다. 교통이 편리하고 또 주변이 시끄러워 예술가들이 작업할 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005년 3개에 불과했던 작가 작업실은 현재 150여 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활동 예술가 수도 300~400명은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 다양한 문화활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2006년대부터 작게 커뮤니티들이 조성이 되면서, 헬로문래협동조합이라는 문화예술단체가 생겨났다. 또 2016년에는 문래 커뮤니티 아트 플랫폼이라는 예술단체 협의체도 생겼다.
이소주 대표는 “사람처럼 지역 역시 생로병사를 겪지만, 사람과 다른 점은 재생이 되기도 하는 점”이라고 전제한다. 영등포의 도시 재생 사업은 이런 산업적 스토리텔링을 딴 경우가 많다. 정크 아트나 공공미술, 업사이클링으로 접근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낡은 철공소 골목과 버려진 철물들이 누군가에는 쓸모없는 쓰레기겠지만, 제품, 역사,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여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에게는 쓸모 있는 가치인 것이다.
“공장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 전설 속의 동물, 기린을 만들어 골목에 놓았더니, 누군가 부수기도 했고, 한 사장님은 왜 쓰레기를 갖다 붙여 놓았느냐고 언짢아하기도 했다. 이게 가치 있다는 걸 알리려면 아직도 설명을 해야 한다. 사장님이란 말 대신 엔지니어라 불러 달라고 하고, 철공소가 아니라 머신밸리라고 부르라는 등 이해관계에서 오는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런 활동이 소통의 접점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진행중이다.”
이소주 대표는 동시에 소소한 간판 하나, 벽돌 건물 하나, 방범창 하나의 제작 연대와 가치를 설명해내는 작업도 병행한다. 시간성의 가치를 일깨우고, 오래된 건물과 현재의 최신식 빌딩이 겹쳐지는 이런 풍경이야말로 문래동의 가치라 역설한다. 그 풍경을 보기 위해 방치된 옥상에 옥상정리를 하자고 제안했고 처음에는 예술가들이나 문화기획자, 소셜디자이너 같은 사람들이 시작했지만 이제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공공미술과 연결되면서 ‘철부지, 철의 땅’이라는 뜻의 철부지 문래 문화투어도 2012년부터 진행중이다.
이소주 대표는 “앞으로의 가장 큰 숙제는 주민과 철공소, 예술가 간의 화합의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가들이 유입되고 동네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들을 만들면서 주민들의 인식은 많이 바뀐 편이다. 초반만 해도 문래동 골목을 없애자고 서명운동을 하던 주민들은 이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경제력이 없는 젊은 부부가 와서 살다가 아이들이 크면 학군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전초기지 같은 동네였다면 지금은 이사율이 줄고, 중학교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철공소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진입을 반길 수만은 없다. 제조업의 침체 속에 예술가들이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게 될까봐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을 고민하며 만든 것이 문래캠퍼스다. 문래동이 활성화되면서 지역과 연계된 사업들이 많이 발생하고, 영등포 혁신지구가 돼서 큰 사업들이 문래창작촌을 통해 벌어지면서 기회가 생긴 것. 이소주 대표는 이 문래캠퍼스를 통해 내년부터 본격적 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한다. 주민과 철공소, 예술가간의 화합의 장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그 시작은 예술공간, 공방들을 하나의 캠퍼스로 바라보고 연결해서 문화 예술을 체험하는 형식으로 이해를 돕게 하는 것이다. 문래캠퍼스의 CI는 빨간색(철공소), 노란색(예술가), 녹색(주민)이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10, 11월 동안 20개 공간, 23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문화예술을 통해 주민과 가까운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방식, 상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소주 대표. 문래캠퍼스를 통해 문래동 골목이 더 환해지고 서로 더 잘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재개발로 슬럼화되는 수색의 골목을 변화시키는 예술
 

 
재개발이 지연되며 낙후된 수색동에서 예술을 통해 지역을 재생하는 작업을 하는 수색예술단의 정현식 대표.
▲ 재개발이 지연되며 낙후된 수색동에서 예술을 통해 지역을 재생하는 작업을 하는 수색예술단의 정현식 대표.

 
지역의 예술가와 함께 골목의 유휴공간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는 활동을 진행했다. (정형식 대표 강의자료)
▲ 지역의 예술가와 함께 골목의 유휴공간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는 활동을 진행했다. (정형식 대표 강의자료)
 
 


정현식 대표가 있는 예술수색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수색동에서 예술을 하는 모임,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술을 수색한다는 의미다. 2014년 11월 처음 얼굴을 맞댄 6명의 예술가들은 2015년 4월, ‘예술을 통한 삶의 재발견’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모이게 된다.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들은 먼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벽화 작업을 했다. 알고 보니 이들 모두 동네의 기록, 아카이빙을 하고 있었다. 모아보니 200장 넘는 영상, 사진물이 있었다. 재개발 지역이기에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이들 모두를 기록을 하게 만든 것이다.
수색동은 20년 동안 재개발을 추진중이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편이다. 예전에는 정이 넘치는 동네였다지만 지금은 찬성파와 반대파가 나뉘어 갈등의 골이 깊다. 어차피 재개발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쉽게 쓰레기들을 투척하고 빈집, 빈 창고가 많으며, 지자체 역시 재개발을 기대하며 투자를 지연시켜 모든 것이 슬럼화되고 있다. 정현식 대표는 “우리가 있는 곳도 개인 소유 건물의 2층인데, 3층에서 빗물이 샌다. 재개발 결정이 될지 모르니까 수리를 안 하고 그냥 둔다. 현재 그런 공간들을 활용해 워크숍 공간으로 쓰고 있다”고 밝혔다.
예술수색단은 이런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지역의 유휴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의 ‘임대중프로젝트’는 빈 상점에 2주 동안 예술가들의 전시를 여는 것이다. 집주인을 찾아가 허락받고 예술가를 초대해서 그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 건물주에게는 빈 공간이 있다는 홍보의 기회가 되고, 예술가들에겐 전시를 할 기회를, 또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주자는 프로젝트였다. 본래 이 프로젝트는 빈 공간을 활용할 이들을 들어오게 하자는 것이었으나 전시 후에도 빈 공간으로 남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고 한다.

지역 내 다양한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관계망 사업으로 마을기업 대표, 지중해소나무공방, 예술수색단이 함께 한 수일시장 프로젝트가 대표적. 이제는 쓰지 않는 시장의 방치된 공간을 치우고 설비해서 문화예술활동 기지로 쓰며 외부 예술가를 초청하여 워크숍도 하고 시장 앞 두부가게가 생겼을 때는 설비를 돕기도 했고, 바로 옆 어두컴컴한 골목에 센서등도 다는 등 활동을 폈다. 초등학교 앞 피아노 학원을 지역 목공선생님과 함께 공간 재정비를 하여 지역 화가의 아뜰리에로 제공하기도 했다고.
예술수색단은 마을투어, 마을여행도 진행하고 있다. 150년 수령의 마을 보호수 앞에서 시작하는 투어의 콘셉트는 스케치 여행. 처음 시작할 때 스케치북을 나눠주고 두세 군데 정도 공간에서 스케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정현식 대표는 “수색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수색역은 일제시대 철로 건설 시기에 만들어진 곳이며 수색동의 변전소는 남한 최초의 변전소다. 6.25때 제일 먼저 공격대상 중의 하나일 정도로 기간시설이 있던 곳이다. 이런 과거를 지나 현재를 본다면, 수색동은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며, 미래는 통일 후 물류기지 창고로 엄청난 가치가 생길 곳이다. 서울의 제일 끝에 있는 역이 수색역 아닌가”라고 여행 때마다 강조한다고 한다.

수색동 바로 옆은 DMC, MBC, SBS, YTN, CJ 등이 있는 휘황찬란한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다. 정대표는 “이 시각적 대조에서 오는 내용을 문화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또한 1930년대 만들어진 작은 토끼굴이 있는데, 수색역에서 하차해 상암동 MBC, SBS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꼭 거쳐야 하는 통로다. 여기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런 활동에 대한 수색동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정대표는 전시할 때 “동네 어르신이 ‘동네를 위해 이렇게 해줘서 고맙다’며 5만원과 감 4개를 주셨는데, 그 뜻이 오만가지가 다 감사하다가 아닐까?”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수색동 중 4구역을 도시재생 휴간지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곳을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했다. 수색예술단 활동을 보고 유휴지 자원을 소개해주는 공무원들도 많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연결시켜준 수색동의 비어 있는 카페와 빈집을 통해 벌써 3번의 전시를 이뤘다고 한다. 또한 최근 역촌동의 쓰지 않는 가압장에 대한 정보도 귀띔 받아 활용계획을 논의중이라고 했다.
“왜 수색역인지 궁금할 것이다. 20년 가까이 재개발을 추진하는 곳과 바로 옆 상암동의 대비를 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문화예술로 풀어보고 싶다는 것이 일차적 생각이고, 둘째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안 활동이다. 홍대에서 수색까지 경의중앙선을 타면 7분밖에 안 걸린다. 많은 홍대 예술인들이 수색, 증산, 은평구로 몰리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떻게 보면 결과이지만, 우리는 시작점이라고 본다. 일단 접근은 자본(빈 건물의 건물주)와 공공(자치구)과 함께 하는 방법을 놓고 있다.”
 





 

 
 
정리_정지연(소소북스 편집장)
사진_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본 기사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야기> vol.48호(2016.12.28.) 기사입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시고, 전문 기사에 대한 링크를 걸어주세요. (단, 영리 목적에 의한 퍼가기는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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