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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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에 맞는 지원 정책

정책웹진 '서울마을' 제6호공동체 공간

 
 
눈높이에 맞는 지원 정책


박동광
협동조합 성북신나
 
 
0.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종종 나오는 ‘달인’ 프로그램을 봅니다. 이번엔 포장의 달인 편. 바쁘게 움직이는 손. 하루에 포장하는 작업량이 다른 직원들의 2, 3배는 된다는 놀라운 손기술을 가진 그. 한참을 감탄하다가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으로 시선이 가며 궁금해집니다. 어떤 차이일까? 어떤 비법일까?
 
2013년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발간한 「커뮤니티 공간 안내서」는 “마을 공간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으로 시작합니다. 그런가요? 지원의 주체도 대상도 늘 찾는 게 ‘비법’입니다. 그래서 컨설팅을 받고, 탐방을 갑니다. 신비의 묘약을 찾습니다. 당시에는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스스로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묘약은 정말 신비하게도 들어맞지가 않고요.
 
‘비법은 없다. 묘약은, 정답은 없다.’
이 기조가 지원 정책이 현장에 맞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가장 넘기 어려운 산 같습니다.
 


1. 어떤 공간을 운영하고 있나요?

첫째, 민간 위탁 방식으로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성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탁 기간은 2년, 연장이 가능하고 최대 5년까지. 위탁 수수료는 없고, 사업비와 인건비가 주어지며, 영리 행위는 불가합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서울시 공간을 운영하기 때문에 사회적 신뢰가 자연스레 생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관의 공간을 대리 운영함에 따라 생기는 자율성의 한계 그리고 스몰 비즈니스·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실험을 할 수 없다는 게 단점입니다.

 

▲ 무중력지대 성북

둘째, 동네 사는 친구들과 임의단체를 만들어 빈 가게를 인수해서 ‘빙그레 다방’을 운영 중입니다. 시설 개선비, 프로그램비 일부를 지원받았고, 보증금, 관리비 등을 자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15명의 출자자가 함께 했고,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실험해 보고자 합니다만, 품앗이 노동의 한계를 만나고 있습니다.


▲ 빙그레 다방
 
 
셋째, 시장의 작은 가게를 임대해 소모임 공간 ‘정릉궁리’를 운영 중입니다. 100% 자비로 운영하고 있기에 자율성은 높지만, 운영비를 위한 상근 시스템이 불가해 지속적인 적자입니다.
 
▲ 정릉궁리

그 외에도 마을기업으로 공간보증금 대출을 받아 사무공간을 운영한 적이 있고(현재 상환함), 입주 공간 형태로 공간 셰어의 경험도 있습니다.
 


2. 어떤 공간에 가 보았나요?

마을예술창작소 지원 사업에 선정돼 운영되는 곳, 지원이 종료된 곳, 지원 사업에서 독립한 곳들에 방문, 이용해 보았습니다. 마을예술창작소는 연대와 조직화에 꽤 성공한 편이라고 평을 받고 있는데, 동네에서 볼 때 실제로 주체성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가 날로 깊어 가는 것 같습니다.
마을기업으로 공간보증금 대출을 지원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의 보증금 상환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정책의 확대기와 소멸기에 생기는 현상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가압장, 고가하부, 창고, 빈집 등이 전시관, 모임 공간 등으로 변화되는 과정과 그 사이의 행정과 시민의 긴장, 협력, 분쟁을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좋은 계기로 해외 현장을 나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냥 놀랍지만은 않은 것이 지역에서 부동산과 관련된 이슈들은 언제나 생기고, 그를 넘어가는 힘은 우리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씨 뿌리고 물주는 시기라면, 10년 뒤, 20년 뒤를 상상해 볼 때 우리 역시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종다양의 커뮤니티 공간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달까요.
 


3. 어떤 절차의 어려움이 있었나요? 어떤 것이 해결되면 좋을까요?

서울마을센터의 前 센터장인 짱가(유창복)가 쓰신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를 교과서처럼 가끔 꺼내봅니다. 주민이자 시민으로서 행정은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눈높이에 맞는 지원 정책을 위해 몇 가지 제안 명을 빌려봅니다.
 

3.1. 칸막이 혁신
한국의 여러 제도 중에 가장 꽉 막혀있고, 복잡한 것이 부동산 관련 정책이 아닐까요. 공동체 공간 지원 정책 역시 부동산에 관한 욕망에 불을 지르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욕망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 지원 정책이 동네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또는 그 피해자가 되지는 않을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각 공동체 공간을 지원하는 부서가 다른 상황인데, 관련 T/F 혹은 상위 부서에서 조금 더 거시적이고 협력적인 사업이 가능하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서의 사업이 아니라 시민의 현장에 맞는 사업의 성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동네에서는 마을예술창작소, 마을기업, 우리마을 공간 사업이 뒤섞여 있습니다.
서울시, 자치구, 광역 센터, 지역 센터의 경계는 효율을 위해 만든 것뿐입니다. 경계를 적극적으로 넘을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시와 지역 센터의 협력, 자치구청과 광역 센터의 소통 역시 필요합니다.


 

 정릉-성신여대 일대 공동체 공간매핑.
민간 주도, 관 주도, 민관 협력 공간을 시민들은 서로 구분 짓지 않고 이용합니다.


3.2. 성과 혁신
공동체 공간 지원의 성과는 무엇일까요? 없었던 공동체가 뿅 하고 생기는 것? 동네의 문제가 해결되는 모델을 만드는 것? 성과를 생각하다 보면 이 지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베네치아의 광장에 있는 카페에 방문한 소회를 글로 남기셨습니다.
“당대 사회를 살면서 당대 사회의 사고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혼자서는 힘겨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우선 당대의 과제를 짐 질 계층이 물적 토대를 만들어야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여러 사람의 중지를 한 곳에 모아냄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의 존재가 필요하고 이러한 공간의 역할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동체 공간은 시대가 망해가는 것을 제대로 진단하고 어떻게 망할 것인가, 망한 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민이 곳곳에서 시작되어야 ‘먹고사니즘’에 눈먼 대한민국이, 서울이 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원의 성과는 무엇을 얻어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원하였는가, 어떤 방식의 변화를 주었는가, 시민은 어떤 부분에서 만족을 느꼈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3. 기간 혁신
하루살이 인생은 생존 외에는 고민하지 못합니다. 지역의 현안을 넘어 미래를 고민하려면 4월에 시작해 10월에 마치는 6개월 지원으로는 안 됩니다. 저는 아직 이 산을 넘은 현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밥은 매일 먹어야 하는데 왜 12월, 1월, 2월에는 프로젝트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서울시는 이 산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요?
 

3.4. 수요 주도와 맞춤형 지원
공동체 공간이 꽃 피우기 위해서는 수요가 있는 지원을 해야 합니다. 책상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막상 현장의 필요와는 너무 달라서 시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먹거리가 있으면 먹으러 오는 이들도 있는 법. 현장의 수요를 채워주는 것만이 아니라, 지원 사업이 먼저 수요를 창출하는 돌연변이 현장과 공간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지원은 약이지만 가끔 독이 되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거든요.
 

3.4.1 마중물 지원
마중물 한 바가지로 물이 올라오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작고 간편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3~6개월짜리 프로젝트, 100~1,000만 원 정도의 지원 사업이면 충분합니다.
영국의 민와일 스페이스(Meanwhile Space)처럼 공간을 몇 주에서 몇 달 정도 사용해보면서 팀빌딩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하게끔 하는 지원 같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3.4.2 불쏘시개 지원
책에서 짱가는 “마을 만들기에 표준 모델은 없다”며 표준에 맞추려고 할 때 마을은 바로 삐걱댄다고 지적합니다. 팀에 대한 자존감, 활동에 자신감이 생긴 팀들에게는 그 현황에 맞는 각각의 실험들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습니다.
기부나 펀딩 방식을 실험하기 위한 캠페인 방식, 사회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을 주주를 찾는 방식, 관 소유의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화를 해 보는 등 예산 관련 지원 외에 전문 컨설턴트와 투자자 등의 인력 지원, 법적 솔루션 제공을 하면 좋겠습니다. ‘없었던 사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3.4.3 다지기 지원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기간이 10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 지역에서 10년을 활동하면 그래도 한 사이클을 돌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다음 세대에 대한 준비를 할 수도 있고요.
다지기 단계에서는 투트랙 지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공동체 공간 그 자체가 학습과 사례의 공간이 되고, 공간 운영자들이 타 지역에 공간이 만들어질 때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공동체 공간 전문가 풀을 만들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공간에서 장소로, 지대(zone)로 확장해 보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점점의 공간을 잇고, 공간 사이의 다른 공동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데 시민이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 이미 있는 정책인 마을 계획, 마을 자치회, 참여 예산을 연결할 수 있는 구슬 꿰기 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3.4.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동안 공동체 지원 정책에 많은 혁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 관료화, 형식화, 단순화되는 경향을 봅니다. 공동체 정책은 ‘시민이 시장’이라는 선언에 대한 실천이며 디테일이 전부입니다.
 

3.4.1 수시 공모제와 찾아가는 상담, 깔때기 지원, 인큐베이팅 시스템
시민의 공간을 지원하는 일은 투자의 관점이나 구제의 관점 모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를 스스로 말하는 시민에게는 응당 자원을 이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잦은 공모제가 아니라 수시 공모제, 열린 공모제가 필요하며 나아가서 ‘필요은행’처럼 시민의 필요를 쌓아놓고 되는 대로 현장에 찾아가서 상담과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깔때기 지원에 대해 짱가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마을 사업에 의욕이 있으면 일단 등록을 권하고, 등록 이후 사업 신청을 원할 시 교육 및 상담 등의 사전 지원을 한다. 설령 등록 후 준비 과정이 길어지거나 도중에 포기해 신청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도 이는 자원 낭비가 아니라 주민 참여를 넓히는 효과를 거둔다.”
 

3.4.2. 패자부활전 지원 제도
저 역시 시민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이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입니다. 누가 심사하여야 하고, 어떻게 심사하느냐가 시민을 대하는 태도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센터에서 하는 ‘서로 심사’ 방식을 채택해서 지원자들이 상호 평가하게 하고 의견을 나누게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30분 기다리다가 5분만 발표를 하고 끝나는 방식이었다면, 서로의 내용을 듣고 질문하고 평하는 시간이 2, 3시간으로 몇 배가 늘었습니다. 소요 시간은 길어졌지만 그 중에 자신의 위치를 알고 서로의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큰 장점도 발견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선정되었으면 하는 팀이 안 되기도 하고, 왜 선정되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 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원 기관의 역할은 잘 뽑는 것보다는 잘 지원하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말이 된 지금의 아쉬움도 우리의 지원이 충분하지 못했다는데 있지 시민이 부족했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런 지원 제도의 보완을 위해 사전 설명회에 맞먹는 ‘미선정 설명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큐베이팅 시스템과 깔때기 지원을 위해 향후 의향이 있는 팀들과 계속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신인 발굴의 장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시민 동료들을 늘려가야 합니다.
 

3.4.3. 포괄예산제도
예산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개인의 삶도 국가의 예산도 수많은 변화를 겪는데 유독 지원 사업은 1원 단위로 해야 하는 노가다(?)가 너무 많습니다. 자율포괄예산제도가 필요합니다. 포괄예산이 40% 정도는 되어야 실수와 우연에서 만나는 관계와 모델 개발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가깝다면 일부러 돌아가거나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도 가끔은 필요합니다.
 

3.4.4 자기주도 평가
마지막으로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정책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더 가혹할지도 모르지만, 공동체 스스로가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수요와 필요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원 종료 후와 지원에서의 독립, 지원 제도의 개편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닫힌 공간, 열린 공간’이라는 글에서 “1.86평 공간 속에 곧추 앉아 냉정한 공간과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며 “높은 옥담으로는 가둘 수 없는 푸른 하늘의 자유로움을 내면화 하려는 의지”를 발견했다고 썼습니다.
 
현재의 제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를 사고의 감옥에 가두어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곳을 넘어가는 기대를 해 봅니다.


 


 


 
본 글은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정책웹진 <서울마을>의 제6호 '공동체 공간'에 실린 글입니다. 정책웹진 <서울 마을>의 다른 글은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www.seoulmaeul.org) 에서 이용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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